전원주택 꿈꾸던 여장부, 산자락에 1만평 비밀가든 일궈

입력 2025.07.30. 10:53 이용규 기자
삼산면 가재길 계동마을 안뜰 일대
나무와 꽃 등 300여종 식물 가꿔
서울생활하다 2006년 귀향 정착
500평 주택 정원서 20배 규모 늘어
그의 손길 거친 꽃과 나무와 매일 애정
100년된 철쭉 비원의 상징물로 인기
2년전 개관해 전남예쁜정원 대상
굿즈개발하고 지역민과 상생공간


해남 삼산면 가재길 계동마을 도로변에 우뚝 선 건물의 보라색 대문이 눈길을 끈다. 대흥사 관광단지와 고산 윤선도 유적지 사이에 있는 길목에 도로보다 높은 곳에 있어 운전석에서 쉽게 눈에 띈다. 언덕 주차장에 차를 세워놓고 안내판을 따라 다다른 보라색으로 색칠한 대문 위에는 노랑나비와 보라색 나비가 노닐고 있다. 바로 옆에서 수문장처럼 서있는 금목서와 은목서는 벌써부터 아름다운 향기를 뿜어낼 것만 같다. 우리 아파트 입구 화단에서 매년 초가을에 은은한 향기를 발산해 기쁘게 했던 나무들이라 계절감을 잊었다. 은목서와 금목서가 주인공이 되는 시기는 10월 중순이니, 아직도 3개월이나 남았으니 말이다. 금방이라도 녹색 물감을 퍼뜨릴 것같은 금목서와 은목서의 환영을 받고, 멈춰선 발길은 외부를 하얗게 마감한 건물 벽 위에 보라색으로 비원이라고 쓰인 간판으로 향한다. 정원안에서 삼삼오오 담소를 나누는 이들의 얼굴에서 행복감과 정겨움이 넘쳐난다. 대지위에는 여름의 또 다른 주인공인 목수국과 백일홍, 능소화가 아름다운 여름을 만들어가고 있다. 일찍이 찾아온 이들은 우산을 받쳐들고 정원을 거닐며 꽃과 나무의 세계에 흠뻑 빠졌다. 원색의 우산과 원색의 자연이 절묘한 청량감을 연출한다.

비원은 '비밀의 정원'을 뜻한다. 정원안에 숨겨진 보석들이 많다는 뜻일게다. 카페안에서 비쳐진 정원 풍경은 단순하게 보인다. 카페를 중심으로 금목서, 은목서, 아카도 철쭉, 수국, 연, 소나무 등과 정원 조형물이 어울러진 공간 정도로 생각했다. 명색이 전남도 예쁜정원 콘테스트 대상을 차지한 곳인데도, 실망감이 들었다.

그러면 그렇지, 바른터전을 뜻하는 한울정원을 지나 산자락 위로 올라가니 숨겨진 주인공들이 하나,둘 나타난다. 비원안에 9개의 연못으로 이뤄진 구룡폭포, 하얀이연못의 연꽃, 박쥐동굴, 비밀의 숲, 동백 정원들 비밀이 드러난다. 우달메산기슭에서 나오는 폭포의 물줄기는 송글송글 맺혀진 얼굴의 땀을 씻어낼 만큼 시원스러움을 선사하고, 활짝 핀 연꽃은 특별한 이벤트다. 평지도 아니고 산에서 활짝 핀 연꽃을 상상이나 해봤겠는가.

탐스럽게 핀 하얀 목수국의 자태는 단촐하면서 당당하다. 연두색에서 하얀색으로 변한 것을 보니 더 여름이 짙어지는 것같다. 팽나무가 밀집한 비밀의숲도 정원지기의 섬세함이 드러난다. 산책로에 깔아논 매트 일부를 걷어내고 잔디를 깔았다. 방문객들에게 녹색 카펫을 걷는 기분이 들게 하고픈 주인의 마음이 읽혀진다. 산책로를 따라 올라가니 옛날 사금을 채굴했던 박쥐동굴이 보인다. 폐광된 그 안에는 박쥐가 지금도 살고 있다. 안내를 받아 껌껌한 동굴안으로 들어가니 급속 냉장된 기분이다. 동굴 한켠에는 투명용기에 비파술이 익어가고 있다. 어느날 투명용기에서 숙성된 비파술은 가든파티에서 건배주로 쓰이지 않을까, 행복한 상상이다.

비원이 세상에 모습을 보인지는 2년전이다. 2023년 7월7일, 땅끝에서 남도정원으로 화려한 데뷔를 했다. 심겨진 나무와 꽃 등 300여종의 식물은 김미정 대표의 정성으로 가꾸어지는 분신들이다. 현산면 출신인 김 대표는 해남에서 고교를 졸업하고 서울에서 직장생활을 하다 지난 2006년 귀향을 했다. 전원주택을 짓고 사는 게 로망이었던 김 대표가 고향에 내려온 이유다. 해남읍에서 살며 2년간 집터를 물색하던 중 이곳을 선택했다. 500평 규모의 땅을 구입해 집을 짓고 마당을 정원으로 가꾸었다. 주택정원을 만들어가던중 늘어나는 주변의 빈집과 땅은 고민의 대상이 됐다. 빈집과 땅을 그냥 놔두면 황폐화돼 미관도 헤치고, 지역문제가 될 것은 불가피했다. 이런 생각에 주변 산과 땅을 매입한 것이 1만평 규모에 이르렀다. 처음 주택정원을 조성하는 것보다 훨씬 더 머리가 복잡해졌다. 여러 가지 방안을 검토하다, 지역에도 도움이되는 공간을 조성하는 것으로 정리했다. 비전문가인 그가 돌파해야할 난관은 만만치 않았다. 구체적 방향이 결정되자 행정 절차가 끝나는 대로 빠른 진행을 위해 포클레인 3대를 투입해 작업을 시작했다. 터를 다지는 기반 작업은 중장비를 동원해서 해결했다고는 하나, 나무와 꽃 등 식물을 심는 후속 작업을 위해 일손을 구하기는 쉽지 않았다. 고령화된 농촌 현실을 반영하듯 외국인 인부들이 나무를 심는 작업에 투입됐지만 모든 것이 그의 손길을 거치지 않은 곳이 없었다. 한울정원과 바람정원, 동백정원 등 심긴 나무를 보면 김 대표가 얼마나 신경을 썼는지 짐작이 간다. 특히 바람의정원과 동백정원 등 4년전 이식된 나무 사이 간격은 자로 잰 듯 오와 열이 반듯한 것이 인상적이다.

김 대표는 "나무는 전후 좌우에서 봐 하기에 중심을 잡는 것이 중요했다. 나무를 심을 때는 더 많은 신경을 쓸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1만평에 달하는 비원에서 크고 작은 나무와 꽃들이 당당한 것은 김 대표의 땀으로 키워낸 결과이다.

김 대표가 그동안 밤낮으로 꽃과 나무를 심어 1만평의 대지와 산자락을 메워간다고는 하나 부족함을 느꼈다. 어린 나무들을 심었으니 어쩌면 당연했다. 어떻게 보완할까 궁리하고 좋은 나무를 탐색하던 중 2022년 5월에 마산면 농가에서 100년된 철쭉을 판다는 말을 듣고 이 나무를 구입하는데 주저하지 않았다. 100년이라는 수령이 우선 고려됐고, 오랜 세월을 품어온 철쭉이 품기는 매력이 그를 집요하게 이끌었다. "해남에 있는 귀한 나무라 다른 곳으로 간다면 평생 후회할 것 같아 적지 않은 돈이었지만 흔쾌하게 구입하게 됐습니다. 방문객들도 백일홍으로 생각하고 있다 철쭉이라고 하면 깜짝 놀라는 경우가 많습니다." 한울정원의 중심에 자리잡고 있는 아카도 철쭉이 그것이다. 붉은 색을 뜻하는 일본어 아카도에서 딴 이름 그대로 부르고 있으나, 새로운 이름짓기도 나설 계획이다.

비원을 상징하는 나무로 자리잡은 아카도 철쭉은 방문객들의 포토존으로 사랑을 받으며, SNS에 공유되고 있다.

김 대표는 아카도 철쭉을 통한 비원의 스토리텔링도 만들어내고 굿즈 제작에도 지속적인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비원은 비밀의숲, 바람의 정원이 자리한 산자락에서 바라본 안뜰 앞의 시원하게 뚫린 차도와 그 양쪽의 농경지와 어울린 풍경은 압권이다. 동행한 송태갑 박사는 이를 차경(借境)으로 표현했다. 송박사는 "주변의 경치를 이용하는 것도 조경, 정원에서는 아주 중요하다"면서 "비원은 안뜰 농경지와 어울린 풍경이 사계절 환상적이다"고 설명했다.

김 대표의 정성과 열정으로 만들어진 정원은 지난 2024년 전남도 예쁜정원콘텐스트에서 대상을 받았다. 김 대표는 혼자만의 공간이 아닌 지역 공동체와 함께하는 곳으로 많은 시도를 하고 있다. 올해 6월과 7월에는 지역민들과 함께 아름다운 정원을 배경으로 어울림장터를 열어 호응을 얻었다. 올해도 가을에 어울림 장터를 계획하고 멋진 무대를 준비중이다. LED조명으로 연출하는 비원의 야경을 해남 관광콘텐츠로 활용토록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비원의 꿈은 현재 노력들이 모아져 더 아름답고 무성하길 기대한다. 그리고 주변의 경치를 빌려 더욱 풍성하고 모든 이들에게 사랑받는 곳으로 오래오래 비밀을 간직한 채 깊은 곳에서 더 아름답게 드러내길 소망한다.

김 대표가 정원 곳곳에 심어놓은 담쟁이와 능소화를 비롯한 덩굴 식물들이 조만간 벽을 타고 푸른 색으로 칠하는 것처럼. 담쟁이가 든든한 벽이 없다면 벽을 타고 오르지 못할 것이기에, 때론 각자가 주인공이 돼 살지만 또 누군가의 배경으로 눈부시게 아름다운 교훈을 주는 것을 꿈꾼다.

이용규기자 hpcyglee@md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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