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백·두보 작품 접하며 시심 키워
11년간 완성 작품 150여편 게재
한시에는 직접 한글 해석 달기도
다양한 그림 곁들여 완성도 더해
문순태 "서권기 문자향 높은 경지"
"기회 닿으면 서울서 전시회 개최"

'붓은 거룻배/나는 사공//산을 친다/흥에 겨워 내리친다//순풍에는/돛을 올리고//거슬러 뭍에 오르면//붓을 내동댕이 친다/튕기는 먹물은 가관//추상회화/한 단면을 보는 듯//붓은 말이 없다'(시 '붓' 전문)
한국 문인화의 기운과 정신을 창조적으로 계승 발전시켜 온 금봉(金峰) 박행보 화백(90)이 최근 시화집 '江山(강산)을 훔쳐보고 詩(시)를 건지다'를 펴내 주목을 끌고 있다.

박 화백은 남도 산수화의 거목인 의재 허백련 화백을 사사해 남도 화맥의 전통을 잇고 있는 작가다. 광주를 지키며 65년의 화업을 이어가는 동안 남도 자연을 자신만의 필법으로 담아내 '금봉산수'를 완성하기도 했다.
특히 박 화백은 시(詩)·서(書)·화(畵)의 삼절(三絶)을 겸비한 작가로, 오늘날 다른 시인의 시를 가져다 자신의 화찬(畵讚·그림에 써넣은 글)으로 쓰는 작가들과 결을 달리하고 있다.
그는 어려서부터 고향 진도에서 명심보감을 읽었으며, 광주에서 의재 문하에 들어간 후에도 꾸준히 한학을 익혔다. 이때 당나라 두보와 이백의 시를 탐독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백과 두보의 시에 매료된다고 누구나 시인이 될 수는 없었다. 더욱이 형식이 까다로운 한시를 쓴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글자 수가 오언(五言)과 칠언(七言)으로 나뉘고 율시(律詩)의 한 수는 사구(四句)로 이뤄져야 하며 운자(韻字)까지 맞아야 하는 까다로운 과정을 거쳐야 했다.

박 화백은 독학으로 터득해 완성한 작품을 읽은 지인으로부터 혹평을 받은 후 한 때 시 창작을 포기하기도 했다. 자신의 미숙한 기량으로 완성도 높은 시를 쓴다는 것이 어렵겠다는 판단이 들었다.
그의 시심(詩心)이 다시 자극을 받은 것은 한시를 잘 알고 있는 한 사람이 자신에게 그림을 공부하러 오면서부터였다. 박 화백은 그를 통해 제대로 된 한시 작법을 배우고 틈틈이 창작활동을 하면서 한시와 한글 시를 한 편 한 편 완성해갔다.
박 화백은 "79세 때부터 11년간 꾸준히 시 창작활동을 했다"면서 "밤에 잠을 자다 생각나면 일어나 글을 고치고 아침에 다시 허리 숙여 탈고하기를 반복하다 그만 등이 꼬부라져버렸다"며 웃었다.

그는 한시를 직접 창작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한글로 직접 해석을 달기도 했다.
'沒入圖之一始終(몰입도지일시종)/焉迎米壽似春夢(언영미수사춘몽)/狂如不及揮毫作(광여불급휘호작)/白眼空然惜碧空(백안공연석병공)'(시 '迎米壽')
'그림에 몰두하여 시종 한 곬으로/어찌 미수를 맞이하니 봄꿈인듯/미친 듯 붓 휘둘러 걸작에 미치지 못하니/공연히 푸른하늘 흘겨보며 아쉬워한다'(시 '미수를 맞으며')
7언절구로 이뤄진 이 시는 미수를 맞을 때까지 평생 그림에만 몰두해왔으나 걸작을 이루지 못한 아쉬움을 담은 내용으로 박 화백이 직접 한글로 번역을 달았다. 그가 A4용지에 직접 펜으로 쓴 한자와 한글들은 한 글자 한 글자가 또박또박 선명해 나이를 뛰어넘는 깊은 창작열기를 느낄 수 있다.

박 화백이 한글 표기법이나 적절한 해석에 확신을 갖지 못할 때 자신감을 심어준 이는 문순태 소설가였다. 박 화백과 평소 친분이 있던 문 작가는 작품을 보자마자 "그냥 그대로 책으로 펴내도 좋겠다"며 적극 출판을 권유했고 마침내 세상에 빛을 보게 됐다.
시화집 '강산을 훔쳐보고 시를 건지다'는 박 화백의 시 150여 편이 그림과 함께 소개됐다.
'그림에만 전념하다 보니 소홀히 했던 한시를 만시지탄하며 아직은 늦지 않았다는 뜨거운 정열이 불타오른다'는 머릿글처럼 지난 11년간의 노력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각각의 시편들은 다양한 그림들과 어우러져 완성도를 높이고 있다.
문 작가는 박 화백의 시화집에서 "금봉의 그림과 시는 서권기 문자향(書卷氣 文字香)의 높은 경지에 이르렀음을 느낄 수 있다"며 "특히 그의 시는 자연친화적인 내용이 많은데 자연에 대한 그의 시는 서정적 감성이 넘치고 깊은 통찰력을 통해서만 가능한 정신적 성숙미를 보여준다"고 평했다.

박 화백은 별도의 출판기념회 계획을 세우지 않았다. 주위 사람들에게 작은 불편이라도 끼치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 컸던 탓이다. 가까운 제자들을 불러 모아 서화집 한 권씩을 전달했을 뿐이다.
박 화백은 향후 서울에서 전시회를 하고 싶다는 바람을 밝혔다.
그는 "매일 그림을 그리고 있는데 100호가 넘는 대작을 포함해 완성된 작품들이 꽤 된다"면서 "지역에서는 전시회를 많이 했던 만큼 기회가 닿는다면 서울에서 행사를 개최해보고 싶다"고 말했다.
김만선기자 geosigi22@md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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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민주화 성지에서···" 광주 출신 장성호 감독의 고백 '킹 오브 킹스' 장성호 감독. 뉴시스북미를 강타한 '킹 오브 킹스'를 연출한 장성호 감독이 4년 장학금을 받고 들어간 전남대학교를 한 달 만에 그만둘 수 밖에 없었던 경험을 고백했다. 5·18민주화운동 주역인 곳에서조차, 더군다나 가장 폭력을 비판해야 할 미대에서 폭력이 아무렇지도 않게 자행된 데 충격받았다는 내용으로 파장이 예상된다. 이에 더해 '민주화의 성지'를 자부하면서도 민주적이지 않은 관행들이 여전히 광주사회 곳곳에서 자행되는 현실에 더해 성찰하는 목소리도 나온다.장 감독은 16일 보도한 경향신문 인터뷰에서 이 같은 경험을 밝혔다. 장 감독은 인터뷰에서 1989년 전남대학교 미술대학에 4년 장학생으로 입학했지만 끔찍한 경험 후 한 달 만에 학교를 떠나야 했던 사실을 털어놨다. 서강고등학교에 재학한 장 감독은 전교 두세 손가락 안에 드는 우수한 성적에도 불구하고 가정형편상 전남대에 입학한 것으로 알려졌다.장 감독은 "어느 날 선배들이 단과대 옥상에 후배들을 집합시켜 엎드려뻗쳐를 시켰다. 곧 팰 분위기였다"면서 "민주화의 성지 전남대에서, 그것도 예술혼을 불태워야 할 미대에서 이런 일이 벌어지는 게 납득되지 않아 반항하고 그 길로 자퇴했다"고 고백했다.장 감독이 겪은 1989년은 1980년 5월 항쟁(5·18민주화운동)과 1987년 6월 항쟁을 거치며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이 최고조에 달했던 시기다. 특히 5·18 민주화운동의 시작점이자 중심지였던 전남대학교는 당시 민주화 투쟁의 상징적 공간이었다. 5·18민주화운동 과정에서 또 군부 정권에 맞서 수많은 전남대 학생이 희생됐다. 그러면서 전남대는 '민주화의 성지'로 불리며, 매년 5월이면 전국에서 이를 기리는 사람들이 찾는다.이런 곳에서 그것도 자유로운 영혼이 존중받아야 할 미대에서 비이성적인 '군기 잡기'와 폭력이 아무렇지도 않게 자행됐다는 사실은 장 감독이 충격을 받기에 충분했다. 더군다나 5·18민주화운동 당시 계엄군은 구금한 학생들과 시민들을 대상으로 옷을 벗겨 얼차려(군기 훈련)를 준 뒤 물리적 폭력을 저지르는 일을 수없이 반복했다.특히 이 같은 폭력적 악습은 오랜 기간 전남대에서 사라지지 않으며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바 있다. 가장 최근인 2015년에는 전남대 예술대학에서 선배가 후배들을 대상으로 얼차려를 주는 모습이 SNS를 통해 알려지면서 큰 논란을 일으켰다. 이 문제로 정기 연주회가 취소되는 일로 이어졌다. 지난 2013년에는 전남대 신문방송사가 실시한 실태조사에서 104개 학과 중 77개 학과가 후배들에게 '얼차려'를 포함한 기합을 준 것으로 나타났다. 민주주의를 위해 싸웠던 자랑스러운 역사 이면에는 부끄러운 민낯이 공존해 왔던 셈이다.다만, 2010년대 후반을 기점으로 얼차려와 같은 폭력은 대부분 사라진 것으로 알려졌다. 선배가 후배를 집합하는 문화가 이른바 '똥군기'로 불리며 사회적으로 자정이 이뤄진 탓이다.#D 애니메이션 '킹 오브 킹스' 내 한 장면. 모팩 스튜디오장 감독 고백을 접한 지역사회에서는 성찰의 목소리도 나온다. 민주와 인권, 평화를 자부하면서도 여전히 비민주주의적인 행태가 이뤄지고 있다는 자조적 고백이다. 실제 해당 기사가 공유된 SNS에서는 "전남대 전체가 이 하나만으로 부끄러워 쥐구멍을 찾을 만큼 통절한 성찰이 있어야 한다", "전남대뿐만 아니라 민주 성지 광주에서도, 이 사회에서도 전체주의적이고 폭력적인 문화가 드글드글할 것이다"는 반응을 보였다.한편, 킹 오브 킹스는 장 감독이 연출과 각본, 제작 등을 맡아 예수의 일생을 다룬 장편 3D 애니메이션 영화다. 북미 박스오피스 6천만 달러를 돌파하면서 국내 단독 제작 영화로는 북미 흥행 역대 1위 기록을 달성했다. 이에 힘입어 이날 국내 전국 500개관·1천200개 스크린에서 동시 개봉한다.이삼섭기자 seobi@md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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