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보다 車 많은 도시의 출퇴근길, 시민들이 편해졌다

입력 2025.12.10. 13:32 이삼섭 기자
공존의 거리 - 자동차 지배를 넘어 ⑥제주도 S-BRT 실험
버스 속도 40%↑·일반차량도 빨라져
도민 "대중교통 타는 입장에선 편해"
짧은 구간 개통에 '효용성' 저하 부각
"길어질수록 효과 커져…현재 과도기"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서광로 내 BRT(간선급행버스체계)가 구축돼 운영하는 모습이다. 버스중앙전용차로를 이용하기 때문에 정시성과 속도가 보장되는 게 특징이다. 이삼섭기자 seobi@mdilbo.com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화북일동에 사는 윤승희(60) 씨는 요즘 출퇴근이 부쩍 편해졌다. 올해 5월 서광로에서 운영을 시작한 BRT(간선버스급행체계) 덕분이다. 예전 같으면 승용차와 택시 사이와 뒤엉켜 느리고 답답했던 시내버스가 이제는 중앙버스전용차로로 쭉 빠져나가니 출퇴근길 고통을 견딜 필요가 확실히 줄었다. 왕복 6차로 한가운데 중앙버스차로를 따라 버스와 택시가 막힘없이 미끄러지듯 지나가는 걸 볼 때마다 속이 뻥 뚤린 느낌을 받는다. 아직은 BRT나 섬식 정류장이 낯설고 구간이 짧아 아쉬운 것도 사실이다. "제주시 전부 이렇게 버스 전용으로 쭉 이어지면 얼마나 편해질까"라는 생각이 절로 든다. 다행히 제주 시내 전역으로 확대된다고 하니 기대가 더 크다.

'자동차의 도시'란 오명을 안은 제주도가 적극적인 BRT 확대로 교통 전환을 시도하고 있어 주목받는다. 자가용과 렌터카로 온 도시가 몸살을 앓고 있는 가운데 차로 확장이 아닌, 차로를 대중교통과 보행로에 내어주는 사람 중심의 교통 정책을 펼치고 있어서다. 섬식 정류장과 양문형 버스 등 새로운 시스템을 실험하며 시행착오를 겪으면서도 BRT 시행 구간에서의 뚜렷한 성과 또한 내고 있다. 제주도 전역으로 확장될 경우 교통 체증과 도심 공간 활용 방식이 크게 달라질 것이란 기대가 커지고 있다.

제주특별자치도 서광로 BRT 정류장 모습. 퇴근 시간 대 시민들이 줄지어 타고 있다. 제주도는 전국 최초로 BRT에 '섬식 정류장'을 도입했다. 정류장 한 곳에서 양방향으로 탈 수 있다는 게 특징이다.

◆사람보다 차가 많은 섬…'제주형 BRT' 추진

제주특별자치도는 오래전부터 '사람보다 차가 많은 섬'으로 불려왔다. 올해 10월 기준 제주도 인구는 66만 5천276명이다. 그러나 차량 등록 대수는 72만 324대다. 다만, 30만 대가량은 등록은 제주도에 하고 실제 운행은 다른 지역에서 하는 기업민원차량이다. 기업민원차량을 제외하고도 세대당 차량 보유 대수는 1.3대다. 전국 시·도 중 두 번째로 높은 수준이다. 전국 평균은 1.09대다. 이에 더해 제주도는 관광객이 연 1천500만 명에 달한다. 더군다나 제주도 관광객 상당수는 렌터카를 이용한다. 제주 여행 시 내국인 관광객의 렌터카 이용 비율은 70~80%대로 알려졌다. 도로 위 차량들로 도시가 몸살을 앓고 있는 셈이다. 출퇴근 시간대 혼잡은 말할 것도 없고, 관광지 인근·도심 진입로는 주말마다 사실상 정체 구간이 된다.

제주도의 BRT 정책은 이 같은 자동차 중심 구조로는 더 버틸 수 없다는 진단에서 출발했다. 신규 도로 개설이나 차로 확장으론 혼잡을 해결할 수 없고, 오히려 교통량을 늘리는 '유도 수요' 현상이 반복된다는 문제의식이다. BRT는 버스를 일반 차량과 분리해 중앙차로에서 우선적으로 운행시켜 속도를 높이고, 정시성을 확보하는 게 핵심이다. 구축 비용도 도시철도(지하철)에 비해 10분의 1에 불과해 빠르게 추진할 수 있다.

이에 따라 제주도는 2016년 첫 대중교통체계 전면 개편을 통해 BRT 도입을 추진했다. 2017년에는 간선-지선 체계를 재정비하면서 BRT를 첫 도심 구간(공항로 0.8km·중앙로 2.7km)에 도입했다. 2020년 이후에는 이를 한 단계 고도화한 S-BRT(고급 간선급행버스)를 목표로 정류장 구조 개선, 우선신호 시스템 도입, 환승체계 강화 등을 순차적으로 추진해왔다. 특히 국내 최초로 섬식 정류장과 양문형 버스를 도입한 게 관심을 받는다. 도로 중앙 양쪽에 정류장을 설치하는 상대식 정류장이 아닌, 단일 정류장을 설치하고 양문형 버스를 활용해 양방향으로 승하차를 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정류장 면적이 줄어들어 보행로를 줄일 필요 없고, 가로수도 보호할 수 있다. 전국이 제주 BRT를 주목하는 이유다.

제주도는 BRT 사업을 총 3단계로 나눠 2026년까지 동·서광로 등 10.6㎞, 2029년까지 연삼로 등 15㎞, 2033년까지 연북로 등 17.7㎞를 목표로 한다. 그 결과로 올해 5월 서광로(3.1km) 구간이 우선 개통됐다.

◆버스기사도, 택시기사도 '엄지척'

제주연구원에 따르면 서광로 BRT 구간 개통 후 2개월간 출근 시간대 버스 이동 속도를 조사한 결과 43% 향상된 것으로 분석됐다. 신제주에서 광양 방면은 시속 14.7㎞로 개통 전 10㎞보다 47%, 광양에서 신제주 방면 이동 속도는 16㎞로 개통 전 11.7㎞보다 37% 빨랐다. 버스전용차로가 아닌 일반차로에서 운행하는 차량 속도도 개통 전 12.6㎞에서 18.5㎞로 47% 향상된 것으로 나타났다. 버스 중앙차로를 피해 우회하는 차량이 늘어서라는 분석도 나오지만, 대중교통 관계자들과 이용자들은 대체적으로 만족해했다.

제주에서 1년 반째 택시를 운전하는 홍동국(54) 씨는 BRT 중앙차로 덕분에 예전보다 훨씬 편해졌다고 호평했다. 홍 씨는 "예전 버스전용차로가 갓길에 있을 땐 화물차, 납품차, 우회전 차량이 다 껴들어서 사실상 전용차로 기능을 못했는데, 이제 버스랑 택시는 다른 차들과 안 섞이니까 훨씬 낫다"며 "제주도는 자가용도 렌터카도 넘쳐나는 섬이기 때문에 오히려 승용차가 불편하고 버스가 활기차게 다녀야 시민과 관광객 모두에게 좋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실제 취재진이 퇴근 시간대인 6시 30분께 제주터미널 앞에서 광양사거리까지 315번 BRT를 타 보자 '도로 위 전철'이라는 이름을 곧바로 실감할 수 있었다. 일반 차량들이 꽉 막힌 도로에서 느릿하게 달리는 것과 달리 쾌적하고 또 흔들림 없었다. 승객들이 많아 서서 가고 있는데도 차선 변경이나 급가감속이 없는 점이 인상 깊었다. 해당 버스를 운영하는 기사 A 씨는 "지금 이 구간만 해도 얼마나 편하게 가고 있느냐"고 반문하며 "다른 승용차와 얽히지 않고 편리하게 갈 수 있으니 편한 느낌이 있다"고 만족감을 보였다.

◆시민 공감대는 과제…노선 확장이 관건

다만 제주지역 내에서는 제주도 BRT 사업에 대한 논란은 현재 진행 중이다. 중앙버스차로가 끝나는 지점에서 버스가 기존 1차로 정류장으로 급우회전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교통체증 등 시행착오를 겪고 있다. 섬식 정류장에 대한 불편도 있다. 섬식 정류장은 양문형 버스만 이용할 수 있다 보니 기존 정류장과 한동안 '공존'이 불가피하다. 횡단보도를 건너야 하는 불편에 더해 환승에 번거로움까지 느끼고 있다. 도청 신문고 '제주도에 바란다'에는 연일 찬반 의견이 맞서고 있다. 그러다 보니 제주도는 BRT 서광로 구간에서 나온 문제들에 대한 개선책을 마련할 때까지 동광로 구간 사업을 잠정 보류하기도 했다.

전문가는 현재 BRT 구간이 짧아 효과를 온전히 체감하기엔 역부족이라고 분석했다. 충분히 연장을 늘린 뒤에 개통하면 시민 불편이나 시행착오를 덜 겪었을 거란 주장이다.

실제 광주시는 지난 2009년 광산구 수완지구 내 임방울대로에 '버스중앙차로제'를 운영했다가 4년 만에 중단했다. 수완지구 조성이 완전히 마무리되지 않은 탓에 수요 부족도 있었다. 그러나 근본적으로는 임방울대로 2.7㎞ 구간 운영에만 그친 게 결정적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제주연구원의 B 연구위원은 "BRT(중앙버스차로)는 연장이 길면 길수록 효과가 커지는 구조"라며 "최소 몇 km 이상이어야 한다고 단정하긴 어렵지만, 지금 제주도 동광로까지 구간이 더 길어지면 체감 효과가 확실히 나타날 것으로 보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도 "모니터링을 꾸준히 한 결과 버스 속도는 확실히 빨라졌다"고 덧붙였다.

또 섬식 정류장과 관련해서도 B 연구위원은 "섬식 정류장은 도로 폭, 정류장 위치, 환승 동선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는 문제"라며 "지금은 중앙·가로변 정류장이 혼재된 과도기라 불편이 생기지만, 정류장이 전부 중앙 섬식으로 통합되면 지금 같은 혼란은 줄어들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이삼섭기자 seobi@mdilbo.com

강승희기자 wlog@mdilbo.com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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