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삼궤구고두례

입력 2025.01.07. 15:23 최민석 기자

삼궤구고두례

김목(동화작가)

무릎을 꿇는 것은 잘못을 저질렀을 때의 행위이다. 또 주먹으로 탁자를 치는 자에게 고개 숙이고, 무릎을 꿇은 모습은 군주시대의 신하와 패전의 장수만은 아니다. 오늘날에도 권력자 앞에 지나치게 바싹 허리를 굽히는 걸 티브이 뉴스에서 심심찮게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민주주의는 모든 권력이 국민에게서 나온다고 헌법에 명시되고, 누구나 법 앞에 평등하며 사법부의 3심 판결까지는 무죄 추정의 보호를 받는다. 그럼에도 모두가 예비 범죄자라는 망상을 가진 자도 있다. 털면 나온다며 압수수색에 주변 사람까지 먼지 훑듯 샅샅이 뒤지기 때문이다. 지은 죄가 없어도 뜻 모를 공포로 눈치를 살피는 연유이기도 하다.

누군들 잘못이 없는데도 두 무릎을 꿇고 싶겠는가? 하지만 민초라고 하는 우리 서민이 권력과 재력에 무릎을 꿇는 것은 무서워서가 아니다. 내일은 뭔가 달라지겠지, 조금은 좋아지겠지 하는 희망, 바로 예측 가능한 그 미래 때문이다. 설령 그것이 허망한 꿈일지라도,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두 무릎을 꿇는 이유라는 걸 권력과 재력을 가진 자들이 알아야 한다. 누리는 권력이 국민에게서 나오고, 소유한 재화는 한정적이며 총량 불변적인 것도 명심했으면 한다.

잠시 조선의 인조 왕 시대로 가본다. 앞서 임진왜란으로 온 나라가 초토화될 때 명의 도움을 받았으면서도 광해군은 후금의 누르하치 세력이 커지는 것에 중립 외교정책을 폈다. 하지만 반정에 성공한 인조와 서인 정권은 기고만장하여 친명배금정책을 명분이라 했다. 결국, 후금의 제1차 침략인 정묘호란을 초래하였고 패배하였다. 하지만 무능에 과대망상까지 겹친 정권은 반성할 줄 모르고 배금정책을 이어가다 제2차 병자호란을 불렀다.

병자년인 1,636년 나라 이름을 청으로 바꾼 홍타이지는 10만 대군을 이끌고 조선을 짓밟아 7일 만에 인조가 몸을 숨긴 남한산성을 포위했다. 이때 최명길 등의 주화파와 윤집, 오달제, 홍익한 등 삼학사를 비롯한 주전파의 논쟁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결국, 준비도 제대로 못 하고 왜란 때와 달리 의병 봉기도 거의 없었던 조선 조정은 권력 쟁취의 다툼에만 빠져 40일 만에 항복하고 말았다. 인조는 한강 삼전도 나루터에서 홍타이지에게 3번 무릎 꿇고 9번 머리를 조아리는 삼궤구고두례를 올렸다. 왕은 인간에게는 그 누구라도 고개 숙이지 않는 자리였으니 참으로 이보다 더한 치욕이 있을 수 없다.

우리는 근대에 일제강점기의 치욕과 군사쿠데타까지 겪었으나, 이제 세계가 부러워하는 민주주의와 경제성장을 이뤘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을 한순간에 날려버린 도무지 믿지 못할 거짓말 같은 사실이 현실이 되었다. 지난해 12월 3일 밤을 티브이 앞에서 뜬눈으로 세우게 한 계엄령과 내란의 폭동 장면은 모든 일상을 엉망진창으로 만들어 버렸다. 그리고 해를 넘겨 1월 3일에도 이른 아침부터 대통령 관저의 어이없는 행태를 티브이 생중계로 지켜봐야 했다. 그렇게 초법적인 일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우리의 일상이 된다면 더 이상 무엇이 끔찍한 일일까 싶다.

민주주의는 법치의 다른 이름이기도 하다. 공정과 상식이 무너진 사회는 미개 후진국이다. 누군들 무릎을 꿇고 싶을까만, 법과 원칙을 훼손한 자는 삼궤구고두례도 아깝다는 생각에 새해가 됐어도 기쁨보다 슬픔이 가슴을 짓누르고 답답할 뿐이다.

# 연관뉴스
슬퍼요
0
후속기사 원해요
0

독자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광주・전남지역에서 일어나는 사건사고, 교통정보, 미담 등 소소한 이야기들까지 다양한 사연과 영상·사진 등을 제보받습니다.
메일 mdilbo@mdilbo.com전화 062-606-7700카카오톡 플러스친구 ''무등일보' '

댓글0
0/3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