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8년 9월9일 창간특집호 발행
36년 2개월 언론의 소명 수행
‘정론직필 한길, 지역발전 공헌,
새로운 길 도전’ 사시 구현 앞장

1988년 전국 최초의 지방 조간신문으로 선보인 무등일보가 36년 2개월여만에 지역민과 1만 번째 만남을 갖는다.
1만호를 맞아, '모든 언론과 출판은 계엄사의 통제를 받는다'는 계엄사의 포고령을 접하고 충격과 분노와 참담함 속에 언론의 존재 의미와 역할을 다시 한번 되새긴다.
전국 최초 지방 조간신문 무등일보의 등장은 1980년 전두환과 질기고 가혹하고, 끔찍한 인연의 고리가 연결돼 있다. 전두환이 자행한 언론 통폐합과 해체, 이후 언론 자유의 상징 중 하나다. 1980년 광주를 총칼로 학살하고 정권을 잡은 전두환은 정권 출범 직후 언론 통폐합을 자행했다. 그해 11월 모든 신문사와 방송사를 강제로 통합, 폐간하는 등 언론의 자유를 철저히 말살했다. 87체제 이후, 8년 만에 기적처럼 언론 자유화가 이뤄지며 무등일보도 세상에 나왔다.
그렇게 전두환이라는 시대의 폐해를 헤치고 국민과 지역민의 알권리, 1980년 진실을 찾아 세상에 나선 무등일보는 '정론직필 한 길, 지역발전 공헌, 새로운 길 도전'이라는 기치를 내걸고 흔들림 없이 달려왔다.
정치·경제 등 일상 전반이 수도권에 장악되고, 진실마저 정부의 선전과 선동으로 규정되던 시절, 무등일보는 그렇게 시대의 요구와 부름을 받고 지상에 나왔다.
무등일보는 언론자유화라는 시대적 요구 속에, 한국 근현대사의 십자가이자 등신불인 1980년 5·18의 진실을 찾아 나서는 숙명을 부여안았다. 이와함께 수도권 블랙홀이라는 기형적 나라에서 비수도권의 목소리를 지상에 전달하고, 퇴행적이고 후진적인 정치지도자들이 자행한 뒤틀린 차별과 정치·경제적 불의를 파헤치고 바로잡아야 하는 과제도 기꺼이 짊어졌다.
무엇보다 이들 뒤틀린 정치지도자들의 행태로 산업화에서 배제돼 경제적 고통에 내몰린 광주·전남의 경쟁력 회복에 앞장섰다.
광주·전남의 범접 불가한 문화적 DNA, 천혜의 자연, 우수한 두뇌를 바탕으로 지역이 미래로 나가도록, 지역사랑을 한데 모으는데 진력을 다했다.
이를 위해 지역 의제를 발굴하고, 지역의 일상을 자원화하는데 적극 나섰다. 무등일보는 지역 생활스포츠 활성화를 위해 창간 때부터 무등기배구대회를 전개하고, 김영랑과 용아 박용철, 김현승, 이청준, 조정래의 뒤를 잇는 남도 문학 혼의 전승을 위해 창간 이듬해부터 '무등신춘문예'를 운영해오고 있다. 또 고작 만 18세가 되면 사실상 강제로 거리에 내몰리는 어린 청소년들, 보호종료아동을 지원하는 '백신나눔' 사업 등 지역의 사회적 약자들을 위한 다양한 사회공헌 활동으로 지역사회 일원으로서 책무를 다하는데도 게을리하지 않았다.
이와 함께 다양한 기획시리즈와 심층보도로 비수도권의 극단적인 침체와 내몰림을 극복하기 위한 대안 모색에 나섰고. 영호남이 공동으로 문제해결을 시도하는 '영호남박람회' 등 현실적 실험도 실행하고 있다.
36년여의 시간 동안 무등일보는 지역사회 의제발굴과 대안 모색, 사회적 약자와 함께 하는 미래연대 등을 통해 지역민들과 신뢰를 형성하며 지역정론지로서 굳건히 자리를 지켜왔다.
지령 1만 호를 맞는 무등일보는 1988년 9월 9일 '창간특집호'를 제작하는 마음으로, 처음의 마음과 정체성, 시대의 과제를 잊지 않을 것임을 다짐한다.
조덕진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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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0년전 심하전투 참전 영광군민 정충보국
1619년(광해군 11) 3월4일 조선군은 압록강을 넘어 지금의 사르후 지역 부차령에서 후금군과 전투를 치른다. 중국은 사르후 전투로 부른다. 사르후는 심하 인근에 있는 지명이다. 명나라군과 후금군 사이 전투가 벌어졌던 전장이 사르후여서 붙여진 이름이다.한국에서는 조선군이 접전한 전투지가 심하와 부차 일대여서 심하전투 또는 부차전투라고 한다. 심하전투는 조선이 당시 중국의 헤게모니를 다투고 있던 명나라와 후금사이에서 약소국가의 민초들의 아픔이 자리 잡고 있다.당시 광해군의 실리와 인조반정 주역들의 명분론이 충돌한 것으로 결국 조선은 대의명분에 밀려 후금의 침략을 받은 명나라의 요청을 받아들여 호남 2천500명을 비롯해 조선 8도에서 1만7천646명이 징발돼 총알받이로 나가야 했다. 이 전쟁에 살아 돌아온 이는 1천400명에 불과했다. 전라도 차출 군사들은 낯설고 물선 이국땅에서 정충보국을 위한 결초보은의 영령이 됐다. 영광지역에서도 100여명이 이 전투에 동원됐다.영광군민들의 국난극복을 위한 정충보국 운동학술세미나가 지난 15일 오후 1시부터 5시까지 영광문화예술회관 소강당에서 군민 2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성료됐다.2025 시군역사문화자원발굴사업 일환으로 마련된 이번 학술세미나는 총 3부로 진행됐다.식전 행사로 다락방연주단과 아리랑예술단 공연에 이어 김성운 영광문화원장의 개회사와 송광민 부군수 환영사와 김강헌 영광군의회의장 축사 메시지로 세미나를 응원했다.2부 학술세미나에서는 노기욱 전남대학교 문화유산연구소 선임연구원이 '영광군민들의 이괄 난 전후 시기 내·외란 극복 활동'을 주제 발표했다. 김상욱 목포대학교 도서문화연구원 연구위원은 '영광군민의 정묘·병자호란 시기 국난 극복 참여와 절도사 이란 장군'을, 노기욱 호남의병연구소장은 '영광군민의 병자호란 창의와 근왕 활동'이 양도사수의 전통을 이어 모곡에 앞장선 점이 다른 지역과 크게 구별된다고 했다.이어 김용철 ㈔전라남도이순신연구소 부소장은 '영광군민의 국난극복 정신 계승과 동학농민혁명' 연구와 김양식 동학농민혁명기념재단 동학농민혁명연구소장은 '영광지역 동학농민혁명 유적과 참여자 현황'을 통해 영광읍성터와 법성진터 및 신화리 동학군 유적 발굴, 조사가 지속적으로 이루어져야 함을 강조했다.김병인 전남대학교 사학과 김병인 교수가 좌장을 맡은 토론회도 후끈 달아올랐다. 토론회에는 김우철 홍익대 교수, 박일훈 남악신문대표, 한동훈 KNS뉴스통신 대표, 서정현 남도일보 경영기획국장이 참여했다.이용규기자 hpcyglee@md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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