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수터) 최루탄과 응원봉

@유지호 입력 2024.12.11. 17:11

1980∼90년대 시위는 최루탄으로 기억된다. 상대적으로 순한 맛이었던 사과탄과 시위 진압용 페퍼포그 차량에서 발사하면 사방으로 튀면서 가스를 분출했던 일명 '지랄탄' 등이다. 최루탄 역사는 기원전까지 거슬러 간다. 아테네와 스파르타 전쟁 때 송진·유황을 태워 그 냄새로 상대방을 무기력하게 만들었다는 기록이 그 것이다. 요즘과 같은 모양새는 1차 세계대전 전후 갖춰졌다.

에피소드가 많다. 치약도 그 중 하나. 대학가는 시위로 연일 몸살을 앓았다. 학내 집회는 퇴근 무렵 금남로를 향하곤 했다. 전남대 정문 사거리·후문 북구청 쪽엔 전투·사복 경찰(일명 '백골단') 등이 방어막을 쳤다. 깨진 보도블럭·돌과 방패, 화염병·최루탄 등이 난무했다. 시내버스 우회 등 교통 통제의 불편함에도 시민들은 휴지와 함께 치약을 던져줬다. 눈물을 막는 데 효과적이란 말이 있었다.

먹먹했던 적이 있다. 5·18 민주화운동을 소재로 한 영화 '화려한 휴가'에서다. 형과 생활하던 고등학생 진우(이준기)가 전교생을 이끌고 시위대에 가담할 때다. 숨진 친구의 죽음이 계기가 됐다. 계엄군의 잔혹한 폭행 탓이었다. 말려도 듣지 않던 흥분한 제자들의 눈과 코 밑에 말없이 치약을 발라주던 선생님의 표정. 30여년 전, 손수건에 치약을 묻혀 주던 선배들의 그 것과 닮아서다.

2000년대 바뀌었다. '촛불'로 상징되는 온라인이 전면에 등장하면서다.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 반대·광우병·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집회가 대표적이다. 유모차 부대나 생활 동호인 등 임계점을 넘어 폭발한 시민들이 거리로 나왔다. 이벤트 성격이 더해졌다. 화염병과 뿌연 최루탄 가스가 노래·공연·자유토론 등으로 대체된 것이다. 주부·고교생·가족들이 동참했다. 현장 인근 카페·식당 등에는 선결제도 잇따랐다.

올 겨울엔 축제처럼 대하는 분위기다. 비상계엄과 대통령 탄핵 추진 국면에서다. 5·18 민주광장은 상징적이다. 'HA YA!(하야)' 부채와 응원봉 연대에, '펠리스 나비다드'를 개사한 '탄핵 캐럴', 로제의 '아파트' 등이 울려퍼진다. '젠지(90년대 중반부터 2010년대 초반 출생) 세대'가 주도하면서다. 재기 발랄한 깃발·구호와 촌철살인의 풍자 등이 넘쳐난다. 그 간 집에 있던 평범한 이들까지 문 밖을 나서면서다. 엑스(X·구 트위터) 등 소셜미디어와 인터넷 커뮤니티 기반의 시위 문화가 새로운 화두를 던졌다.

유지호 디지털본부장 hwaone@sr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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