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아이파크 때도 법안 봇물
처리는 3건에 불과…대부분 폐기
"우선순위 삼고 입법 계획 마련必"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 이후 국회에서 관련 법안이 쏟아지고 있지만, 실효성 있는 정책으로 이어질지에 대한 의문이 제기된다. 과거에도 대형 사고가 발생할 때마다 유사한 법안들이 경쟁적으로 발의됐으나, 시간이 지나 관심이 사그라지면서 실제 제·개정되는 사례는 극소수였기 때문이다.
20일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에 따르면, 지난해 12월29일 무안공항에서 발생한 제주항공 참사 이후 이날까지 참사 예방 및 대응 강화를 명목으로 12건의 법안이 발의됐다.
참사 발생 이틀 뒤인 12월31일 민형배 의원이 공항·비행장시설의 설치기준을 법률로 상향 조정하는 '공항시설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대표발의한 것을 시작으로, 항공사고 발생 시 국토교통부에 비행기록장치 기록 자료를 의무보고토록 하는 '항공·철도 사고조사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 항공안전위원회 구성을 법률에 명시하는 등 현행법 미비점 보완을 위한 '항공안전법 일부개정법률안' 등이 잇따라 발의됐다.
이 밖에도 비슷한 내용의 법안이 국회에서 계속 발의되고 있다.
하지만 얼마나 실제 입법으로 이어질지는 미지수라는 지적이다.
이태원·화정 아이파크 참사 등에서도 사고 직후 관련 법안들이 우후죽순 나왔지만, 대부분이 상정은커녕 발의 단계에서 사장됐다.
지난 2022년 이태원 참사 이후 국회에 발의된 관련 법안은 총 45건이다. 모두 제안 이유나 주요 내용에 '이태원 참사'를 언급하며 각종 재난 안전 체계 등을 강화하는 내용을 담았다.
이중 국회 문턱을 넘은 법안은 단 3건에 불과했다. 20건이 임기 만료로 폐기됐고, 19건이 대안반영폐기, 3건이 계류 중으로 사실상 거의 모두 입법화에 실패했다.
광주에서 발생한 화정 아이파크 붕괴 참사나 학동 붕괴 참사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참사 직후 국회는 앞다퉈 건설산업기본법 개정안 등 30건 이상의 재발 방지책을 내놓았다.
그러나 가결된 건은 고작 3건에 그쳤다. 법안에 대한 실질적 논의는 3년여 간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 이에 90% 이상이 임기 만료로 폐기되거나 잠들어있는 상태다.
이처럼 국민적 관심이 높은 시기를 이용해 법안을 발의한 뒤 시간이 지나면 흐지부지되는 '반짝 발의'의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 이슈 선점을 위해 비슷하거나 중복되는 내용의 법안을 '남발'하는 의원들의 행태에 대한 비판도 나온다.
특히 이번 여객기 사고와 같은 대형 참사는 예방·대응 체계 강화와 동시에 사고 진상 규명와 보상 문제까지 포괄적으로 다뤄야 하기에 면밀한 검토와 후속 논의가 시급하다. 이런 상황에서 국회 기능이 법안 발의에 치중되는 현상을 경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조선익 참여자치21 공동대표는 "여야 또는 집행부 간 충분한 사전 논의와 소통 없이 발의된 법안은 완성도가 낮고, 관심을 지속시키기 어려워 입법으로 이어지기 어렵다"며 "참사 이후 시간이 지나면 사고성 법안은 추진 동력을 잃게 된다. 또 사고성 법안은 개인이나 정당에 큰 이득이 없기 때문에 의원들은 정치적 이득이 있는 법안에 더 집중하게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조 대표는 "참사는 거의 인재(人災)로, 충분히 예방할 수 있다. 그러므로 안전에 관련한 법 제·개정이나 운영은 다른 법들과 차별화된 접근 방식이 필요하다"며 "국민들이 해당 사안에 계속 관심을 가지는 것도 중요하지만, 현실적으로 '위로'나 '슬픔'에 의한 여론의 지속력은 한계가 있다. 정당에서 참사 관련 법안을 '우선순위 법안'으로 삼고 체계적인 입법 계획을 세우는 것이 효과적일 것"이라고 강조했다.
강주비기자 rkd98@md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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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설도 막지 못한 따뜻한 한끼···혹한 속에 피어나는 광산구 나눔식당의 온정 6일 정오께 광주 광산구 우산동 나눔식당 '함께라면'에서 어르신들이 식사를 하고 있다. 강주비 기자 "눈이 와도 꼭 와야죠. 여기 와야 따뜻한 밥을 먹을 수 있으니까요."눈발이 거세게 흩날리던 6일 정오께 광주 광산구 우산동에 위치한 나눔식당 '함께라면' 앞. 두꺼운 외투를 껴입은 어르신들이 하나 둘 모여들었다. 매서운 바람에 몸을 움츠리면서도, 식당 문을 여는 순간 퍼지는 따뜻한 밥 냄새에 얼굴엔 자연스레 미소가 번졌다.지난해 11월 문을 연 '함께라면'은 8년째 횟집을 운영 중인 사장 조정선(58)씨가 식당 건물 한켠에 조성한 '셀프 무료 급식소'다. 매일 오전 11시부터 오후 2시까지 어르신, 결식아동, 외국인노동자 등 취약계층을 위해 무료로 라면과 밥, 반찬을 제공하고 있다. 토요일에는 동태탕, 뼈다귀 해장국 등 특식도 마련된다.6일 정오께 광주 광산구 우산동 나눔식당 '함께라면'을 찾은 어르신에게 봉사자가 라면을 배식하고 있다. 강주비 기자조씨는 "지난해 식당에 불이 났을 때 주민들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며 "평소에 동네 어르신과 한겨울 일거리가 없는 외국인노동자들이 밥을 잘 챙겨먹지 못한다는 소식을 듣고, 주민들의 도움에 보답하고자 '함께라면'을 열게 됐다"고 말했다.원래는 횟집 옆 15평 남짓한 별도 공간에서 급식소를 운영했지만, 최근 폭설과 한파로 수도가 얼어붙자 조씨가 급히 장사하는 공간 일부를 내어 어르신들을 맞고 있다.이날 이곳을 찾은 어르신들은 한 그릇의 라면과 밥, 정성껏 준비된 반찬이 추운 겨울 큰 위로가 된다고 했다. 우산동에 사는 노철환(80)씨는 "노인당은 일주일에 사흘만 밥을 줘서 나머지 날에는 혼자서 밥 해결하기가 힘들었는데, '함께라면'이 문을 연 뒤부터는 사람들과 함께 이곳에 와 밥을 먹는다"며 "사장님과 봉사자 분들이 항상 따뜻하게 맞아줘 감사하다"고 말했다.식당에서 만난 김영국(79)씨는 "친구가 무료 급식소가 있다는 소식을 알려줘 자주 오게 됐다"며 "집에 혼자 있는 것보다 여기에 와서 동네 사람들과 얼굴을 보고 이야기 나누는 게 좋다. 라면도 이곳에서 먹는 게 제일 맛있다"고 웃었다.6일 정오께 광주 광산구 우산동 나눔식당 '함께라면'에서 봉사자들이 식사 메뉴인 라면을 준비하고 있다. 강주비 기자어르신들이 식당에 들어설 때마다 봉사자들의 손길은 더욱 바빠졌다. 라면을 끓이는 냄비에선 김이 모락모락 피어올랐고, 임시로 마련한 배식대에는 단무지와 무말랭이 등 정성이 담긴 밑반찬도 준비됐다. 창밖에는 눈이 쉴 새 없이 내렸지만, 이곳만큼은 따뜻한 온기가 감돌았다.얼어붙은 손을 비비던 어르신들은 봉사자가 가져다 준 라면 국물을 한 숟갈 떠넣고는 "아, 따뜻하다" 하며 연신 감탄했다. 어르신들은 라면 그릇을 앞에 두고 "어제까지 많은 눈이 내려 길이 미끄러워 올까 말까 고민했는데, 와보니까 오길 잘 왔네.", "혼자 집에서 밥 먹는 것보다 여기서 같이 먹는게 백 배는 좋지." 옆자리 사람들과 소소한 이야기를 나눴다.이제 '함께라면'은 단순히 무료로 밥을 제공하는 곳이 아닌 서로 안부를 묻고, 함께 마음을 나누는 공간이 됐다. 봉사자 조은희(51)씨는 "집에만 갇혀 있던 어르신들이 라면을 먹으며 주위 사람들과 말 한마디라도 나누니 행복해하신다"며 "사장님께서도 어르신들이 마음껏 드실 수 있도록 음식을 아끼지 않으신다. 덕분에 후원과 봉사 요청이 늘어나고 있다"고 말했다.광주 광산구 우산동 나눔식당 '함께라면'을 운영하는 조정선(58)씨. 강주비 기자다만 최근엔 폭설로 인해 길이 꽁꽁 얼면서 거동이 불편한 어르신들의 발걸음이 줄어들고 있다. 매일 평균 30~40명의 어르신들이 방문했지만, 요즘은 그 수가 절반으로 줄었다.조씨는 "처음엔 10명 남짓하던 이용객이 입소문을 타고 많을 땐 70명까지 왔다. 하지만 요즘은 날씨가 너무 추워서 20명 정도만 오신다"며 "혼자 사는 어르신들은 끼니를 챙기기 힘든데 걱정이 된다. 빨리 날씨가 풀려 더 많은 어르신들을 뵐 수 있길 바란다"고 말했다.강주비기자 rkd98@md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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