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나고야시의 시민 연극단이 광주에 와서 양국이 가장 껄끄러워 하는 주제를 가지고 연극을 한다는 다소 생경한 소식이 광주문화재단을 통해 들려왔다. 일찍 예매를 했지만 잊고 있었다. 확인하는 문자를 받고서야 기억을 해냈고 지난달 말 찾은 무대를 보곤 깜작 놀랐다. 비 오는 토요일 오후 600여 빛고을 시민문화관 대극장 좌석이 만석이었다.

허술한 무대와 조명, 어쩐지 어색한 진행…. 그것은 한낱 기우였다.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은 언어도 아니고, 능숙한 연기도 아니고, 유명한 연기자도 아니었다. 일제 강점기에 일본은 우리나라의 13살, 14살 어린 소녀에게 일본으로 가면 공부도 시켜주고 돈도 벌게 해준다고 꾀어냇다. 그러다 집안의 반대에 부딪히자 소녀들을 협박하여 강제로 집을 나오게 만들었다. 일본으로 강제로 끌려간 소녀들은 강제 노동에 시달리다 불구가 되기도 하고 동남해지진으로 죽기도 했다. 모진 삶 끝에 아무런 약속도 댓가도 받지 못한 채 해방을 맞아 고국으로 돌아온 미쓰비시 근로정신대가 있다. 이 중에는 연극의 주인공으로 나오시는 양금덕 할머니도 있다.

연극은 38년 동안 미쓰비시 근로정신대 진상규명과 피해자들의 인권회복을 위해 활동해 온 일 본 시민들이 한일 양국에 던지는 양심의 소리였다.

일본 '아이치현민의 손에 의한 평화를 바라는 연극모임'과 '아이치현 평화를 여는 연극회', '나고야 미쓰비시 조선여자근로정신대 소송을 지원하는 회'가 2003년 같은 제목으로 무대에 올리고 2022년에 '봉선화 2022'그리고 이번에 광주공연의 제목인 '봉선화 Ⅲ'으로 올렸다.

20년 역사가 말해주듯 대본 또한 그들이 만든 금요행동 집회의 활동과 소송 과정들을 담고 있었다. 차별과 억지, 몰이해를 이겨내고 행동하는 양심으로 함께한 사람들의 발자취를 담은 연극은 참으로 가슴이 아려왔다.

연극 대사 중 "가해자도 일본인, 그것을 바로잡기위해 돕는 사람들도 일본인"이라는 대사가 마음을 울렸다. 그들은 일본정부를 향해서 잘못한 것을 인정해야한다고 했다 . 주권이 국민인 자신들에게 있는데 장부가 잘못하고 있으면 국민이 깨우치게 하려고 노력해야하고 미래세대에게 제대로 알려야한다고 했다. 더불어 지난해 한국정부의 일련의 조치들에 대해서도 이해할 수 없다고 했다.

연극은 일본어로 진행됏고 자막에 우리글로 해설을 넣었다. 중간중간 아리랑이 흘러 나왔다. 그리고 우리 가곡인 홍난파 선생의 '봉선화'를 한복을 곱게 입은 일본 가수가 노래를 하고 그에 맞춰 춤사위도 펼쳐졌다.

참 아이러니 했다. 자막은 일제 강범기 시절 금지곡이었던 '봉선화'의 의미를 알려주고 있었다. 그 암흑과도 같았던 시절 '아리랑' 과 '봉선화'는 우리 민족을 닮아서 사랑받던 노래였음을 알고 있다.

필자는 지난 해 광주성악가협회 한국가곡연주회 '백년을 피운 꽃'을 연출하면서 동료들과 많은 숙의 끝에 친일사전에 등재된 작곡가의 노래는 배제하기로 결정했다. 지난 몇해 동안 친일 작곡가에 대한 논란이 있어서였다. 그런 가운데 이 노래를 일본 가수의 목소리로 듣게 되는 감정은 뭐라 말 할 수 없었다.

양금덕 할머니 역할을 맡은 주인공 무토씨가 두 주먹을 불끈 쥐고 오열하고 배우들이 진심을 다해 이 끝나지 않은 싸움과 이야기를 전하고 도전해야 하는 이유를 울먹이며 내뱉을 때, 맹인가수가 지인에게 의지해 등장해서 청아한 목소리로 모두에게 희망과 위로와 평화를 전할 때 누구라고 할 것 없이 같이 눈시울이 붉어졌다.

할머니들에게 죄송했고,무관심에 사죄하고 싶었다. 그리고 멀리에서 와준 그들에게 고맙고 감사했다. 이것은 사람이기에 가능한 일이다. 어느나라 사람이 중요한게 아니라 양심을 가진 사람이기에 가능한 일이다.

역사를 바로잡고 계승하는 일은 아주 중요하고 큰 일이다. 문화와 예술이 그 일에 일조를 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예이다. 광주문화재단이 1년동안 공을 들여 성사될 수 있었던 만큼 좋은 기획력이 돋보였던 작품이었다.

'봉선화 Ⅲ"은 아직 미완성이다. 도쿄에서 2025년에 공연계획이라고 하지만 어떤 변수가 있을지 모른다.

아직 시간이 남아 있으므로 완벽한 대본이 되었으면 한다. 아직 살아계신 두 분의 할머님이 승소햇다는 소식이 대본에 담겨져 무대 위에서 배우들이 만세를 외치며 다같이 기쁨의 아리랑을 부르는 모습을 볼 수 있었으면 한다. 그 곳이 도쿄던지 서울이던지 꼭 가서, 또 기립 박수를 쳐드리고 싶다

유형민 광주성악가협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