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 복개된 물길 따라 걷는 길, 빗물은 왜 '괴물' 됐나

입력 2025.09.03. 18:44 최류빈 기자
최류빈 취재1본부 정치·기획팀 기자

악어의 입 속에 머리를 들이미는 듯했다. 숨 막히는 악취 속, 맨홀 뚜껑을 열고 손전등을 켠 채 용봉·서방 복개하천을 살펴보던 기억이다.

관로를 치달리는 저 물의 출처야 분명했지만 끝 간 데를 가늠하기조차 어려웠다. 이 빗물은 도대체 어디로 흐르는 걸까.

지난 7월 지역을 뒤덮은 '극한 호우'로 두 명이 목숨을 잃었다. 교각을 붙잡고 물살에 휩쓸리지 않으려 안간힘을 쓰던 이, 침수차량 위로 피난갔던 이들의 모습이 뇌리를 스친다. 8월에도 피해가 가중되면서 광주는 비에 잠겼다기보다 비애에 잠겼다. 시민들은 왜 수난이 반복되며 대안은 없는지 묻고 싶을 뿐.

수십 년째 생태순환 개념에 몰지각한 광주시는 복개천 하수관에서 '괴수(怪水)'를 키웠다. 저 밑에 괴물이 산다던 봉준호 작품처럼, 반복된 복개공사와 불투수면 확대로 도시 숨구멍이 틀어막힌 것이다.

전문가와 침수피해가 잇따른 신안교 복개하천 일대를 함께 걸었다. 동개천을 파묻은 누문동에서 인위적으로 꺾여버린 물줄기, 병목현상을 야기하는 다리 밑 기둥과 기단들이 눈에 들어왔다. 도시 곳곳에 포장된 가짜 보도블럭도 피해를 키운 공범으로 지목하고 싶다. 상습 침수지대인 중흥·용봉동 일대에는 표면에 빗금만 그은 스탬프 아스콘이 아직도 깔려 있다.

상황을 객관적으로 전하기 위해 실험도 진행해야 했다. 관계자 도움을 받아 국가표준기술원의 투수성 포장체 시험방법을 준용, 직접 스테인리스 강판을 잘라 실험 기구를 만든 뒤 빗물 투수 속도를 비교했다.

그 결과 아스콘 포장은 투수 기능이 사실상 전무한 데 비해 투수블럭은 초기 배수 속도가 최대 80배 빨랐다.

이렇듯 문제가 복잡하지만 오히려 해법은 분명하다. 불투수면을 줄이고 생태하천을 복원해야 한다는 것, 그런 와중 광주시는 근본 대책과 거리가 먼 대심도 빗물터널(지하방수로) 공사를 성급히 논의하는 등 변죽만 울렸다. 보도 이후 그나마 시의회 등이 물 순환을 모색하는 생태하천 정책토론회를 열겠다는 소식이 들려와 다행이다.

당장 개천할 수 있는 구간도 보인다. 800여m에 불과한 소태천은 하수도 정리만 선행되면 즉시 복원도 가능하다는 데 전문가들 생각이 모인다. 또한 교통량이 부족한 북구청-신안교 일부 영역을 편도로 바꾸면서 기존 12m 관로를 확대하자는 방안, 전남대 용지를 준설해 서방천의 물을 담아두는 아이디어도 거론되나 하수 처리가 선행돼야 한다.

파묻힌 하천이 생명을 얻으면 사람과 수생생물이 함께 살아난다. 최근 증심천 등 도심 하천 곳곳에서 물고기 집단 폐사가 이어져 자치구에서 회당 400마리~500마리씩을 수거했다. 일교차로 인한 용존산소량 급감이 한 원인으로 지목되지만 복개하천 역시 무관치 않으리라.

지역 건축업계 관계자는 "투수포장을 하더라도 기초 저단 공사가 부실하면 한계가 있다"는 조언도 건네 왔다. 공공에서는 투수블록을 깔기 전 지표면 밑을 흙으로 다져 스펀지처럼 만드는 경우가 많지만 민간에서는 하부에 콘크리트를 타설하는 경우도 관측된다는 말이다. 향후 언론은 생색내기식 행정이 아니라, 투수층 아래까지 물이 스미도록 시공하는지 감시할 책무가 있다.

도시가 몇 번이나 더 수몰돼야 생태 하천이 숨 쉴 수 있을까. 협의·보상 문제 등에 가로막혀 논의가 공회전하는 동안 광주는 '잠수 도시'라는 오명을 얻고 있지 않나.

그 속에서 경제, 육체적 피해를 입은 시민들이 침잠하고 있다. 아름다운 실개천을 콘크리트 아래 파묻은 뒤 '헛물'만 켠 광주시가 더는 홍수 피해의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이유다.

최류빈기자 rubi@md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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