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IP 격노설'에서 'VIP 격노'로 '설(說)'자 한 자가 빠지는 데 2년 걸렸다.
'설'은 항간에 떠도는 바람결에 들려오는 소리, 즉 풍설(風說)이다. 예컨대 어느 집에서 부부싸움을 했는데 그 장면을 직접 보지는 못했더라도 고성이 사립문 밖으로 흘러나오는 것이나, 부부가 화해하고 고깃국을 끓여 먹는데 솥은 보지 못했더라도 그 냄새가 솔솔 피어나오는 것이 '설'이다.
'아니 땐 굴뚝에 연기 나랴'는 속담처럼, 대개 '설'이 제 혼자 생겨나기는 어렵다. 그것이 바람결에 돌다가, 근거가 부족하면 낭설에 그치지만, 정황이 그럴싸하여 여럿이 믿으면 정설로 굳어진다. 이번 건은 목격자 진술이라는 확증이 나오면서 '설'자가 떨어져 나갔다.
'VIP 격노설'은 윤석열 전 대통령이 2023년 7월 31일 '외교안보 수석비서관 회의'에서 채상병 사건 조사 결과를 보고받고 "이런 일로 사단장을 처벌하면 누가 사단장을 할 수 있겠냐"며 '격노'했다는 것이 주 내용이다.
'VIP 격노'는 2025년 7월 11일 피의자로 특검에 소환된 김태효 전 국가안보실 1차장이 "대통령의 격노가 있었다"고 처음으로 말을 바꾸고, 당시 회의에 참석한 이충면 전 외교비서관, 왕윤종 전 경제안보비서관 등 여러 명이 인정하면서 '설'자를 뗀 '격노'가 되었다.
VIP는 왜 격노했나? '박정훈 해병대 수사단장이 임성근 전 해병대 1사단장 등 8명을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로 경찰에 이첩'한다는 보고를 받고, 격노했다. 여기서 '바이든, 날리면' 만큼이나 유명한 "이런 일로 사단장을 처벌하면 누가 사단장을 할 수 있겠냐"는 고성이 나온다.
VIP 격노에는 즉각 후속 조치가 따르는 법.
특검은 최근 'VIP가 임성근 사단장을 혐의자에서 제외하라고 지시'했다는 방첩사 내부 문건을 확보했다. 그렇게 임성근이 살아나고, 사건의 경찰이첩은 중지되고, 국방부장관 이종섭은 호주로 도피하려다 미수에 그치고, 박정훈 대령은 항명죄로 기소되는, 하나의 거짓을 떠받치기 위해 열 개의 해괴한 일이 벌어지는 지경에 이른다.
또 하나, 그 격노가 진짜 격노인지, 연출에 의한 격노인지, 특검이 풀어야 할 일이 남아있다. 진짜 격노는 오해가 풀리면 화해의 여지가 있지만 가짜 격노는 그 거짓을 감추기 위해 끝을 봐야 하기 때문에 더 지독한 법이다.
'채상병 사건'의 격노가 진짜인지, '물이 스미듯 서서히 젖어드는 살갗을 파고드는 참소'처럼 장수라는 자의 눈물겨운 로비에 의한 가장된 격노인지, 특검이 밝힐 일이 많다.
252년 후한 삼국시대, 위오 접경지역인 지금의 안후이성 소호(巢湖) 인근에서 양국이 격돌하는 '동흥전투'가 일어난다. 위나라 장수는 사마의의 아들 사마소, 오나라 장수는 제갈근의 아들 제갈각. 오가 지형을 이용하여 대승을 거둔다. 위는 병사 수만을 잃고 패퇴했다.
사마소가 패잔병을 이끌고 가다가 어느 협곡에 이르러 묻는다. "이번 패전은 누가 그 잘못을 책임져야 하겠는가?" 부하 장수 왕의가 답한다. "책임은 원수에게 있습니다(責在元帥)."
희생양을 찾으려는데 그 손가락질이 대장인 자신을 향하고 있는 것이다. 사마소가 격노한다. "너는 나에게 죄를 뒤집어씌우려 하는가"라면서 왕의를 끌어내 참수하고 회군한다. 왕의의 아들 왕부는 아비의 죽음을 원통해 하면서 은거했다. 사마 일족이 위를 찬탈하고 진(晉)을 세우자, 왕부는 평생 궁이 있는 서쪽을 향해 앉지 않았으며, 그 나라 백성이기를 거부했다.
'소학'에 나오는 이야기다. 사마의의 격노와 고성이 윤석열의 격노와 고성과 많이 닮았다. 그 앞에 서서 '책임은 우두머리가 져야 한다'는 일갈은 서릿발 같다.
권한을 위임할 수는 있지만 책임을 위임할 수는 없는 법, 승리의 과실을 독차지하는 자가 패전의 책임도 져야 하는 것은 자명하다. 그 격노와 고성 앞에 '채상병과 약속을 지키겠다'고 버티고 선 박정훈 대령. 왕의는 참수되었고 박정훈은 항명죄로 기소되었지만 둘은 또 사생취의(捨生取義)하는 기개가 닮았다.
지난 7월 9일 무죄가 확정된 날, '박정훈 대령의 무죄는 다른 말로 하면 윤석열(대통령)의 유죄'라는 논평을 시민사회가 내놓았다. 2천 년의 시공을 넘어 '책재원수!', 그 말이 같다.
이준석 개혁신당 대표가 지난해 4월 "박 대령이 만약 무죄가 나온다면 윤석열 대통령의 탄핵 사유가 될 것"이라고 했다.
채상병 사건은 명태균의 폭로와 쌍벽을 이루면서 12·3 계엄을 촉발했고, 결국 윤석열호가 침몰하는 도화선이 되었다.
'이런 일로 사단장을 처벌하면…'에서 '이런 일'이란 '이만한 일', '고작 이 정도의 일'이라는 말인데, 명령을 받고 격랑 속으로 들어간 한 사병의 죽음을 그렇게 칭했다. 이 말은 졸을 졸로 보는, 병졸(卒)의 죽음(卒)을 하찮게 여기는, '우두머리'로서 그의 근본을 드러낸다.
졸을 졸로 보면, 민(民)도 졸이 되는 법. 민이 졸이 될 때, 배는 뒤집힌다. 배는 뒤집히고, 책임지지 않는 우두머리 밑에서, 난파선 생쥐들의 양태가 나타나고 있는 것이 작금의 현실이다. 그의 파멸은 그의 말에 예고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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