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린아 김인후부터 뿌리내린 시문학
필암서원에서 목판 등 소산 보존해
기대승·기정진으로 이어진 뿌리가
근대에 김우진·박흡·오영재 낳기도
한학·영문학 다양한 분야 문인 탄생
1989년 출범한 장성문협이 맥 이어

설총, 퇴계 이황, 율곡 이이, 포은 정몽주, 하서 김인후, 우암 송시열…. 신라부터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한국사에서 학문을 두고 빼놓을 수 없는 이들의 공통점은 '동방 18현(東方 十八賢)'에 오른 학자라는 점이다.
동방 18현은 신라부터 조선시대까지 나라의 최고 정신적 지주에 올라 문묘(文廟)에 모셔진 18인의 유학자들이다. 이들은 한국사를 통틀어 손에 꼽히는 학문적 자취를 남긴 지성들로, 뛰어난 학식과 덕망으로 후세에 존경을 받는 학자들이 이름을 올렸다.
이 중 서배향 제5위인 하서(河西) 김인후(金麟厚·1510~1560)는 조선의 대표적인 성리학자다. 장성 대맥동에서 태어난 그는 어린 시절부터 시문에 매우 뛰어난 자질을 보여 10살 때 모재 김안국으로부터 '소학'을 배우기도 했다. 그는 시조 3수와 1천600여 편에 달하는 한시를 남기고 세상을 떠났다.
하서의 작품 세계는 자연 속에서 인간의 존재를 인식하고 천명에 따라 자연과 조화롭게 살아가는 '천인합일' 사상으로 자연을 바라보는 것이 특징이다. 또한 벼슬을 버리고 낙향한 후 남도의 누정을 찾아다니며 자연을 완상했다.
장성 황룡면 필암리에는 그의 학덕을 기리기 위한 필암서원이 위치해있다. 보물과 문화재로 지정된 목판과 문서 등 조선시대 서원 운영과 선비 교육에 관한 기록·사료들을 보유함으로써 그 역사적·학술적 가치가 크다.
◆'문불여장성' 배경에는 하서 김인후가
흥선대원군은 장성을 두고 '문불여장성(文不如長城)'이라 칭송했다. 문불여장성은 '학문으로는 장성만 한 곳이 없다'는 뜻으로, 그의 평에 걸맞게 장성은 학문과 선비의 고장으로 불리며 문화재와 기념물로 선정된 서원들이 자리한다.
하서는 전북 순창 훈몽재에서 머물며 '자연가'를 통해 자연과 인간의 일체 된 모습을 노래하며 장성에 시문학의 뿌리를 깊이 내렸다.
'청산도 절노절노/녹수라도 절노절노/산 절노절노 수 절노절노/산수간에 나도 절노절노/….'
김인후로부터 시작된 장성의 선비 정신과 학문은 고봉 기대승과 노사 기정진으로 이어진다.
고봉(高峯) 기대승(奇大升·1527~1572)은 전라도 광주목 소고룡면(현 광주 광산구 신룡동) 출생이다. 그는 서울에 과거 시험을 보러 가던 도중 하서 김인후를 배알해 태극도설을 논했다. 장성 황룡면에 소재한 요월정에서 풍류를 즐기며 누정시를 지어 읊기도 했다.
조선 후기 성리학의 6대가 중 한 명으로 불리는 노사 (蘆沙) 기정진(奇正鎭·1798~1879)은 전북 순창군 복흥면에서 태어나 18세부터 장성에서 생활했다. 독자적인 학문 세계를 구축하며 위정척사 운동에 참여했던 그는 장성 진원면에 정사 담대헌을 짓고 제자를 양성했다. 이는 현재 고산서원으로 남아 전남도 기념물 제63호로 지정돼 사당인 고산사를 비롯, 기정진의 문집과 목판이 보관돼있다.

이 외에도 유학자이자 경세가였던 조선시대 문신 망암 변이중(1546~1611), 전라도 관찰사로 지낸 지지당 송흠(1459~1547) 그리고 청백리의 표상인 아곡 박수량(1491~1554) 등의 학자들을 통해 장성에 대대로 학문과 사상이 큰 물줄기로 흐르고 있음을 파악할 수 있다.

◆다양한 장르·걸출한 예술인 탄생시켜
개화기 이후 장성의 문학과 예술은 농경사회에 기반을 둔 문학과 민속 프로그램이 이어져왔다.
장성이 배출한 현대문학의 대표적인 인물들로는 희곡 작가 김우진, 시인 박흡, 월북시인 오영재 등이 있다.

장성 읍서면 성산리에서 출생한 김우진(1897~1926) 작가는 27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하기 전까지 발표한 시, 수필, 평론, 희곡 등이 100여 편에 이를 정도로 왕성한 창작 활동을 펼쳤다. 목포로 이주한 김 작가는 와세다 대학을 졸업한 후 목포로 귀향하며 '산돼지', '이영녀', '난파' 등을 남겼다. 그는 한국 연극의 개척자로서 작품세계는 표현적 자유와 표현의 창조를 강조하는 것이 특징이다. 문학의 열정과 천재성을 동시에 보여주며 한국문학사에 큰 획을 그었다.

박흡(1912~1962) 시인은 경향신문에 '젊은 강사'를 발표하며 문단에 등장했다. 광주에 정착한 후 1950년부터 다양한 동인 활동을 하며 시작 활동을 전개했다. '못' 등의 시편을 발표하고 교사로 재직하며 문학청년들을 지도하기도 했다.

시인 오영재(1935~2011)는 장성에서 출생해 한국전쟁으로 인민의용군에 징병돼 월북 '평양작가학원'을 졸업했다. 이후 '김일성상'을 수상, 계관시인으로 '노력영웅' 칭호를 받은 북한의 대표적인 시인으로 알려져 있다.
아동문학의 김일로, 김병효, 백민, 서원웅, 김희숙, 이종은 작가 등은 교과서에 작품이 수록되는 등 활기찬 창작력을 보인다. 특히 김병효는 지역 아동문학계의 원로로 초창기 아동문학의 기반을 다지는 한편 후진 양성에도 주력했다.
오늘날까지 활발하게 활동 중인 장성 출신의 문인으로는 김정옥 시인, 조병기 시조시인, 기일혜 수필가, 서영명 방송작가, 김병옥 문학평론가, 김희숙 수필가, 송방순 동화작가 이 있다.
장성이 낳은 문인들의 가장 큰 특징은 시와 소설 외에도 다양한 예술 분야에서 그 명성을 드높이고 있다는 점이다.
한학자 변시연(1922~2006)은 한국 한문학계의 중심인물로 한학자 중 가장 많은 문집을 편찬했다. 그 영향으로 장성의 한시, 한학, 향토사 연구 등이 타 시도에 비해 현재도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장성 장성읍 단광리에서 태어난 임권택 영화감독은 이청준의 '서편제', 심훈의 '상록수', 조정래의 '태백산맥'등 한국 문학을 대표하는 거작들을 영화화하며 문학의 대중화에 공헌했다. 그가 제작한 영화 '서편제'는 한국 영화 최초로 100만 관객을 돌파했다.
영문학자 오홍석, 김정수 등도 한 시대를 이끈 연구자들이다. 또한 '명심보감' 등 한문 강론자로 변신한 희극인 김병조 등으로 이어지는 장성의 문학적 맥은 해를 거듭할수록 발전하고 있다.

◆장성 문학 발자취 이어가는 문인들
장성 문학의 맥을 잇기 위해 조직된 장성문인협회(이하 '장성문협')는 1989년 변시연과 김병효 회장의 지도로 출범한 '장성문학회'가 그 효시이다.
장성문협은 30년이 넘도록 활발한 문학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초기 개관했던 당시 회원의 자질 향상을 위해 연수를 통해 다양한 교육을 추진했다. 또한 격월제로 회원들의 순회 작품 발표회, 하계문학 세미나 등을 진행하며 회원들의 창작력을 고취했다.

지난 2014년에 장성문협이 발간한 '장성문학대관'은 장성문학을 보존하고 맥을 잇기 위한 노력의 결과물이다. 700여 쪽의 방대한 분량의 대관에는 장성문학의 학문 전통과 인물, 장성문인들의 문단활동과 지역 문학의 발전, 장성문학회와 장성문협이 걸어온 발자취 등의 기록이 담겨있다. 당시 장성문협 회장이었던 박형동 시인은 발간사에서 "문불여장성에 대한 자부심을 가지고 살아왔지만, 자랑스러운 장성의 문학작품을 집대성하지 못했다"며 "장성문학대관의 편찬을 계기로 전국에 장성문학이 더욱 알려지고 나아가 장성문학이 더욱 창달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현재 장성문협 회장으로 활동 중인 변재섭 시인은 70여 명의 회원들과 기관지 '장성문학' 발간을 비롯해 다양한 연례행사와 활동을 펼치고 있다.

'장성문학'은 시, 시조, 동화, 소설 등을 게재하는 종합 반기지로 상반기와 하반기 두 차례에 걸쳐 발간된다. 앞서 지난해에는 봄과 가을 시화전을 비롯해 문학기행, 시낭송대회, 장성문학축제 등을 개최했으며 올해도 문학기행과 장성문학축제 등 다채로운 행사를 추진할 방침이다.
최소원기자 ssoni@md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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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화한 기후와 넓은 강, 상상력 자극의 원천" 김옥희 백호문학관 학예연구사 "시인이란 세상에 예민한 촉수를 대고 가장 먼저 반응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나주 문인들에게는 이러한 시대정신을 놓치지 않고 작품에 반영해왔다는 공통점이 있지요."김옥희 백호문학관 학예연구사는 나주 문학의 특징에 대해 '모순과 불합리에 안주하지 않는 날카로운 시대 정신'으로 정리했다.온화한 기후와 너른 평야, 유유히 흐르는 영산강은 문학과 문화예술이 발달할 수밖에 없는 환경에서, 임제부터 정우채, 오유권에 이르기까지 나주 문인들은 각자가 살았던 시대와 인간의 삶이라는 묵직한 주제를 공통적으로 그려냈다는 것이다.김 학예사는 "현실을 외면한 뜬구름같은 서정이 아니라, 우리 삶에 기반한 단단한 감성이 생동감 있게 살아있는 것이 나주 문학의 특징이다"며 "나주 문인들에게 영산강은 단순한 작품의 소재가 아니라 인간의 삶과 고뇌가 담겨있는 삶의 현장 그 자체다"고 말했다.이러한 흐름 시작은 나주문학의 뿌리인 임제로부터 비롯했으며 그를 기리고 있는 백호문학관은 어린이글짓기대회, 찾아가는 청소년 문학교실, 백호시강독회 등을 열며 백호의 문학세계를 전하고 있다. 전시실, 수장고, 체험실, 도서실, 집필실 등을 갖추고 시민과 함께 하는 문학프로그램도 연중 운영 중이다. 특히 매주 토요일 진행되는 '한시 100수 읽기'는 전국에서 사례를 찾기 힘든 한시 관련 시민강좌로 나주의 높은 문학 수준을 보여준다. 올해는 타오르는강문학관과도 협업해 등단작가와 함께하는 시창작교실, 시낭송회등도 열릴 예정이다.또 2018년부터는 백호임제문학상을 운영했으며 지난해에는 시대의 모순과 불의에 저항해온 거리의 시인, 송경동 시인이 본상을 수상하기도 했다.김 학예사는 "백호문학관이 곧 나주문학관이다. 백호를 시작으로 나주의 문학정신과 전통을 현대에 계승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며 "그동안 백호임제문학상이 시상식만 단촐하게 운영했는데 올해부터는 나주문학제를 신설해 문학상 시상식, 문화콘서트 등 시민들이 함께 즐기는 문화축제로 만드려고 한다"고 밝혔다.끝으로 "장기적으로는 나주문학에 대해 가장 전문적이면서 가장 대중적인 문학관이 되려 한다" 며 "다양한 학술사업과 대중프로그램을 꾸려나가 백호문학관이 나주문학의 거점이자 허브로 자리매김하도록 노력하겠다"고 전했다.임창균기자 lcg0518@md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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