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사농가, 매년 온도와 사투
전남지역 폭염일 수 늘수록
에어컨 가동일 덩달아 증가
깨끗한 물과 사료 공급 필수

"기온이 오를 때마다 관리·운영비가 뛰어요. 땀샘이 없는 돼지들은 에어컨 등 냉방장치와 깨끗한 물·사료 공급이 필수죠. 무더운 여름에 삼겹살 등 돼지고기 가격이 치솟는 이유도 여기에 있어요."
전라남도 순천시 상사면에서 20년 째 양돈농장을 운영하고 있는 주철수(56) 대표의 설명이다. 각각 1개 동이 250평씩 하는 4곳의 축산동에서 돼지 2천500마리를 키우고 있다. 분만·생장·출하 등이 한 곳에서 이뤄지는 '일괄 사육 농장'이다. 돼지는 고온에 민감하다. 그는 "돼지는 땀샘이 없어 호흡과 물을 마시는 것으로 체온을 조절한다"면서 "물을 많이 마셔서 열을 배출 해야 하는데, 서열상 어린 돼지들은 물통 가까이 가기도 어려워 폐사하는 경우가 있다"고 말했다.
축사 관리비가 증가하는 이유다. 폭염일 수가 늘면서 냉방시설 가동기간도 길어지면서다. 전남도에 따르면 지난 2024년 전남 지역의 폭염일 수는 30.1일로 집계됐다. 5년 전인 2020년(7.7일)보다 폭염일 수가 4배 가까이 늘었다. 2023년 14.2일에 비해 2배 이상 증가했다. 주 대표는 "3년 전 만해도 5∼6월께 시작해 9월까지 에어컨을 틀었다"면서 "하지만 여름이 길어지면서 2023년부터는 4월 말부터 10월 초까지 에어컨을 가동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전기세를 낼 때 체감한다고 했다. 에어컨 가동 기간이 늘어나면서 냉방에 들어가는 전기세 부담이 더욱 커져서다. 봄·가을철(3월~5월, 10월) 한 달 평균 300만~350만원 내던 걸, 여름철(6월~9월)엔 800만원대를 부담한다. 시설투자 비용도 만만치 않다. 7년 전, 4개동에 에어컨 설치 비용으로만 2억원가량 들었는데, 현재는 40~50% 올라 3억원 가까이 된다. 축사의 평당 에어컨 규모가 커지면서 비용도 늘었다.
여름철 폐사와 무관치 않다. 최근 5년 가운데 폭염일 수가 가장 길었던 지난해(30.1일)에는 104농가에서 돼지 1만4천718마리가 폐사했다. 해당 기간 가장 큰 피해 규모로 기록됐다. 5년 전인 2020년 폭염일 7.7일 동안 5농가에서 30마리가 폐사한 것과 비교하면 폭염일 수가 5배 가까이 늘었고, 폐사한 돼지는 490배 이상 증가했다. 주 대표는 "시설이 열악할 수록 폐사가 많이 일어난다"며 "폭염 기간이 매년 길어지고 있는 만큼 에어컨 등 시설을 갖추지 못한 농장은 축사 운영이 갈수록 힘들어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아찔한 경험을 했다. 지난해 10월께 장기간 농장을 비웠을 때다. 갑작스런 정전 탓에 축사 에어컨 가동이 멈추면서 10여 마리가 폐사했다. '하석' 등 한낮 기온이 30도에 육박하는 무더운 날씨가 10월 중순까지 이어지던 시기다. 다행히 이를 빨리 발견한 직원들이 창문을 열어 환기 시켰고, 전기도 10시간 만에 다시 들어와 큰 피해는 면할 수 있었다. 한여름이었다면 더 큰 피해가 불가피 했던 순간이었다.

생산성 문제와도 직결된다. 주 대표는 "지속된 더위에는 서서히 적응을 하지만, 갑작스런 폭염 땐 폐사가 늘어난다"며 "무더위 뒤, 극한호우와 함께 찾아오는 찜통더위도 문제"라고 지적했다. 일단 온도 변화에 민감한 어미돼지는 사료 섭취량이 줄어들고 분만이나 젖주기 등 활동성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그는 "출하를 앞둔 돼지들 역시 섭취량이 감소하기 때문에 출하 일령이 늘어나거나 품질이 떨어진다"고 하소연했다.
실제 손해를 감수하고 있다. '폭염 시 160일인 출하 일령'을 늘리지 않고 ㎏ 수가 조금 떨어지더라고 정해진 날짜에 출하하고 있다. 평상시 땐 1마리 당 1등급으로 50만원 가량 받았을 돼지 가격을 2급 45만원 정도에 출하하고 있다.
치솟는 사룟값도 부담이다. 주 대표는 "시중에서 가장 비싼 사료를 사용해 사룟값만 한달 평균 1억원이 든다"며 "최고급 사료로 품질 좋은 돼지를 키워내기 위해 1년 내내 품질 좋은 사료를 공급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여름철에는 등급이 떨어지기 때문에 당연히 손해가 난다"고 말했다.
분뇨 처리 비용 또한 여름철 운영 비용을 가중시키는 요소로 꼽힌다. 돼지들이 고온 속에서 적정 체온을 유지시키기 위해 많은 물을 섭취하는 만큼 분뇨가 늘어나기 때문이다. 그는 "분뇨는 발효시켜 비료로 만든 뒤 논과 밭에 뿌려지는데, 여름철 우기 땐 논·밭에 처리하기 힘들어져 처리 비용은 '부르는 게 값'된다"며 "평상시보다 30%는 늘어난다"고 토로했다.

폭염 피해에 대한 근본적 지원책도 주문했다. 전남도가 고온 피해 예방을 위해 사료 첨가제를 공급하고 있지만, 실질적인 시설 투자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주 대표는 "돼지 축사 자체가 단열이 돼야 사료 첨가제를 먹여도 효과가 있을 것"이라며 "에어컨 설치도 단열이 돼야 의미가 있는 만큼, 낙후된 농가들이 이상 기후에 대비할 수 있도록 시설적인 지원이 이뤄지면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강승희기자 wlog@md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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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 적응과 상업화 가능성은 별개···선제적 준비 필요 신민지 국립원예특작과학원 온난화대응농업연구소 농업연구사 "기후변화에 따른 '과일 주산지' 개념 재정립이 불가피 해요. 이 같은 변화에 맞춰 농작물 재배 지형도도 새롭게 그릴 때죠."신민지 국립원예특작과학원 온난화대응농업연구소 농업연구사의 분석이다. 그는 지금의 기후 변화를 "과거의 계절 편차 수준을 넘어선, 작물 생육 환경 전반을 재구성하는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전에는 생육 기간 중 폭염이나 저온이 한두 차례 오는 정도였다면, 현재는 생육 시기 전체에 걸쳐 기상이 불안정한 경우가 많아졌다는 취지에서다.실제로 농촌진흥청에 따르면 2021년 이후 과수나 채소 작물의 피해가 갈수록 커지고 있다. 봄철 이상고온과 여름철 극한호우, 겨울철 이상고온 현상이 되풀이 되면서다. 과거와 같은 품종, 방식, 지역 만으로는 더는 재배를 장담할 수 없다는 것이 재배 현장의 공통된 목소리다. 신 연구사는 "특히 사과·배처럼 저온이 일정 기간 지속돼야 하는 과일의 경우 재배 한계선이 북상하고 있다"며 "전북, 경북 남부에서도 품질 저하나 개화 이상 현상이 관찰되고 있다"고 말했다.지구온난화는 이 같은 현상을 가속화 하고 있다. 온실가스 배출이 아주 높은 수준일 때를 가정한 기후변화 시나리오인 'SSP5-8.5'를 기준으로 분석하면 2070년쯤엔 강원도 고지대 일부 만이 재배적지로 남을 가능성이 크다. 전통적인 '과일 주산지'의 개념이 흔들리고 있다는 뜻이다. 이에 따라 농촌진흥청은 과수 재배 지도를 새롭게 구축하는 있다.신 연구사는 현재, 장기 시나리오에 따른 작물별 적지 변화를 예측하는 연구를 하고 있다. 농촌진흥청은 최근 20여 년 간의 기후 분석을 바탕으로 우리나라 아열대기후대가 10% 수준에서 2050년께면 56%까지 확대될 수 있다고 전망했다. 이는 제주도나 남해 일부에서만 가능했던 열대·아열대 작물 재배가 내륙 중부권에서도 가능해질 수 있다는 의미다. 아열대기후대는 연평균기온이 18℃ 이상이고 겨울철 최저기온이 작물의 생육에 치명적이지 않은 지역이다. 동백나무·감귤 등의 아열대 작물이 노지에서 월동 가능한 기후권을 뜻한다.신 연구사는 "온난화가 무조건 위기라고만 볼 수는 없다"며 "그러나 문제는 속도"라고 강조했다.그는 "애플망고나 패션프루트, 레드키위 같은 작물은 이미 도입이 이뤄졌고 일부는 상업화 단계에 들어섰다"며 "그러나 이 역시 품종 개량, 하우스 인프라 구축, 재배 기술 전수 등 시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관건은 '선제적 준비'다. 정밀한 기후 모형을 바탕으로 행정과 농가가 공유 가능한 데이터베이스 구축이 시급하다는 거다. 온난화대응농업연구소는 고랭지 배추의 적지 분석에 이어 복숭아·포도 등 주요 과수의 재배 적지도를 새롭게 작성하고 있다. 그는 "단순히 '지금 재배 가능한 지역'이라는 정보에 그치지 않고 앞으로의 기후 조건을 고려해 지속 가능한 재배 전략을 마련할 수 있도록 돕는 데이터를 만들고 있다"면서 "단기 기상이변에 대한 대응과 중장기 품종 재배 전략, 기술 전환이 동시에 논의돼야 한다"고 강조했다.김혜진기자 hj@md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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