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력산업, 경쟁력 약화·보호무역 확산 등 대내외적 위협
미래 먹거리 사업 성장 더뎌…중장기적 도태 가능성 높아
‘기업가적 가치’ 확산해야 기업들 모여…시민 인식 바껴야

광주와 전남지역의 낙후한 경제 현실은 수십년간 지역 주민들에게 좌절감을 안겨줬다. 최근에는 지역 주력산업이 무너지는 와중에 인구소멸까지 겹치며 지역 몰락의 서막이 열리고 있다는 위기감마저 감돈다.
그러나 위기는 필연 기회를 태동한다. 이 같은 위기는 지역에 새로운 DNA를 강하게 요구한다. 혁신이라는 DNA다. 생명력을 다한 DNA를 저편으로 보내고, 미래를 마주할 DNA를 갖추는 것, 혁신이다. 스스로 혁신하는 도시와 지역에 기업이 모이고 만들어진다.
지금 광주·전남 경제는 대내외적 악재 등으로 주력 산업이 무너지고, 미래 먹거리가 될 신(新)산업은 본궤도에 오르지 못하고 있는 위기 상황에 놓여 있다. 본보는 이런 지역경제의 위기를 기회로 바꾸고, 혁신의 불꽃을 피워 경제 르네상스 시대를 열기 위한 혁신적 방안을 찾아본다.
◆광주·전남, 몰락한 美 디트로이트가 보인다
광주·전남지역 산업 전반에 걸쳐 위기는 이미 징후를 넘어 현실로 다가왔다. 새로운 산업의 성장이 더디기만 한 사이 광주와 전남의 각각 주력 산업인 가전과 석유화학이 무너지고 있다.
광주 가전산업의 큰 축인 삼성전자는 삼성전자는 지난해 말 일부 냉장고 생산 라인을 해외로 이전했다. 또다른 축인 대유위니아그룹은 근래 가전 부분 계열사들이 줄줄이 기업회생절차를 밟으면서 사실상 도산한 상황이다. 광주에서 불이 꺼지지 않던 하남산단의 최근 가동률은 50% 아래로 떨어졌다. 가전산업 생태계가 무너지면서 수백여개에 이르는 협력업체가 함께 무너지는 중이다.
보호무역주의가 강해지고 물류비가 지속적으로 상승함에 따라 삼성전자가 광주 내 생산 물량을 점차 줄이고, 장기적으로는 문을 닫을 수도 있다는 전망까지 나온다.
자동차산업도 안심할 수는 없다. 광주는 자동차산업에 대한 의존도가 절대적이다. 광주 자동차산업은 제조업 전체 매출액의 43.1%를 차지한다. 자동차 산업이 몰락하며 도시도 함께 몰락한 미국 '디트로이트'가 결코 남일이 아니다.
전남지역 경제를 사실상 떠받치고 있는 여수 석유화학단지도 위기다. GS칼텍스와 LG화학 등 주요 대기업들의 공장 가동률이 지난해 60%까지 줄었다. 품질에 가격 경쟁력까지 갖춘 중국의 저가 공세에 버티질 못하면서다.
광주세관에 따르면, 광주·전남지역 지난해 11월 수출은 지난해 같은 달보다 20.5%가량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광주는 29.8%, 전남은 17.3% 줄었다.

◆국가 미래 먹거리 산업에 지역 지분 없다
광주·전남은 국가 첨단전략산업 밸류체인에 합류하지 못하며 미래가 더욱 암울하다. 대한민국 6대 첨단전략산업은 ▲반도체 ▲디스플레이 ▲2차전지 ▲미래차 ▲바이오 ▲로봇 등이다. 여기에 방산산업 정도가 더해진다.
정부의 R&D 예산이 어느 지역으로 흘러들어가는지만 봐도 알 수 있다. 최근 5년간(2020~2024.8) 산업부 전담기관 R&D 예산 지원은 총 21조9천560억이다. 이를 권역별로 살펴보면 수도권(서울·인천·경기)이 44.1%, 경상권(부산·대구·울산·경북·경남) 24.0%, 충청권(대전·세종·충북·충남) 22.5%다. 호남권(광주·전북·전남)은 7.6%에 불과하다.
대한민국이 밀고 있는 첨단산업에서 광주·전남지역의 지분이 없다는 의미다. 이 같은 상황에서 수출로 지탱하는 대한민국 경제 구조가 무너질 경우 광주·전남 지역은 제대로 된 나무 한그루 없이 잡초만 무성하게 될 거란 건 예견된 상황이다.
◆예견된 미래, 지역 불균형 '당위성'으론 안 된다
광주·전남지역은 그간 국토의 불균형 발전을 해결해야 한다는 당위성만 앞섰다. 그러나 당위성에 호소하는 접근법은 실제적인 투자 유치로 이어지지 못했다. 근본적으로 중앙 정부와 지자체가 지역 불균형 해소를 위해 정책적 노력을 기울인다 하더라도 기업들이 여전히 광주·전남 지역을 매력적인 투자처로 간주하지 않는다.
반면, 광주 광산업과 광주글로벌모터스(GGM)의 성공 사례는 지역 경제 발전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준다. 지난 1999년 광주가 지역전략산업으로 정부에 제시하고, 정부가 호응한 덕분에 광주가 전국의 광산업 중심지가 될 수 있었다. 어느 지역도 시도하지 않던 아젠다를 만들고, 정부의 지원을 끌어내 자동차와 가전에 이은 제3의 먹거리 산업을 만들어낸 셈이다.
광주글로벌모터스(GGM) 또한 광주가 아젠다를 제시해 만들어 낸 작품이다. 국내 자동차업계의 고임금과 저생산성 구조를 파고들어 적정노동과 적정임금을 제시해 대기업(현대차)의 투자를 끌어냈다. 결국 당위성으로 호소한 게 아닌, 정책에 상상력을 입히고 기업이 투자할 조건을 만들어 준 게 통한 셈이다.
◆도시가 스스로 DNA 혁신할 때, 르네상스 열린다
위기를 기회로 삼아 성공한 도시 사례는 충분하다. 핀란드 오울로는 2000년대 초반 노키아가 몰락하면서 지역 경제에 심각한 타격을 입었다. 그러나 지역 정부와 대학, 지역민이 협력해 ICT(정보통신기술), 바이오테크, 웨어러블 기술로 전환을 추진하면서 북유럽 기술 중심지로 성장했다. 특히 스타트업 생태계도 활성화됐는데, 노키아에서 일하던 풍부한 인력을 스타트업(창업) 부흥으로 전환한 셈이다.
도시와 시민이 가만히 있는데 기업들이 알아서 투자해 줄 일은 만무하다. 가만히 있는데 자연스럽게 지역 내부에서 경쟁력 있는 산업과 기업이 탄생하고, 그를 중심으로 한 생태계가 만들어지지 않는다.
정치인 바꾼다고 도시의 산업이 흥하고, 기업이 몰려오지 않는다. 인재가 살고 싶어지는 도시를 만들지 않은 채 기업들만 유치하라는 소리만큼 공허한 것도 없다.
시민들의 인식이 곧 도시의 인식이다. '기업가적 가치'를 스스로 갖추지 못한 도시에 어느 누가 기업을 하려 하고, 어느 누가 창업을 하려 하는지 지역민들 스스로가 따져봐야 한다. 기업가적 가치는 단순히 이윤을 추구하려는 가치가 아니다. 창의적이고 혁신적 사고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고 지역과 사회에 새로운 기회를 창출하는 태도다.
광주·전남 경제 르네상스를 위한 첫걸음은 지역민들의 인식 변화에서 시작된다. 중요한 건 혁신 DNA를 기업인에게서, 정치인에게서, 남들에게서 찾으면 안 된다. 결국 도시를 이루는 건 시민 하나하나가 모여서다. 시민들이 혁신 DNA를 갖고 나서야 비로소 도시 전체가 혁신할 수 있게 된다. 이른바 광주·전남 경제 르네상스의 도래다.
이삼섭기자 seobi@md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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